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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 23

[동문][도전 #해시태그] 나의 열정은 나이 들지 않는다

나의 열정은 나이 들지 않는다 배구선수 윤봉우 동문(체육학과 00) 2005년 국내 V리그 원년부터 현대캐피탈과 한국전력, 우리카드를 거치며 프로배구 베테랑 센터로 코트를 누벼온 윤봉우 선수가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까닭이다. 지난 6월,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우리카드와의 계약 불발로 임의탈퇴 신분이 됐다. 사실상 은퇴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그는 극적으로 일본 프로리그 진출을 확정했다. ▲배구선수 윤봉우 동문(체육학과 00) 국내 V리그 남자선수 최초 일본 진출 V리그 통산 449경기 출전, 2645득점, 907개 블로킹 성공. 결코 가볍지 않은 이 기록들은 윤봉우 선수가 걸어온 시간을 말해준다. 그는 지난 시즌 우리카드의 주장으로서 팀을 사상 첫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다. ‘마운틴 블로커’로 불리며 베스트 7에도 선정된 노련한 센터로 블로킹 개수 역대 랭킹 2위에 올라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여러 국제 대회에서 활약했고,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다. 82년생으로 불혹(不惑)의 마흔을 1년 앞둔 나이. 현재 그는 현대캐피탈의 리베로 여오현 선수(42세)에 이어 2번째로 나이 많은 현역이자 센터 포지션 최고령 선수다. 수많은 기록과 함께해온 배구 인생이었다. 하지만 윤봉우 선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하나의 타이틀을 추가했다. V프리미어리그 ‘나고야 울프독스’와 계약하며 국내 V리그 남자선수 중 일본에 진출한 첫 케이스가 된 것이다. 국내 리그 전체로 봐도 일본 ‘JT 마블러스’에서 활약한 김연경 선수에 이어 두 번째다. “새 시즌을 앞두고 재계약이 안 돼 임의탈퇴 선수가 됐어요. 다른 팀으로의 이적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고요. 정말 은퇴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예상치 못하게 일본 리그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죠.” 우리카드에서 안정적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지만, 더 많은 것을 이루고픈 그의 마음과 구단의 생각이 너무나 달랐다. ‘은퇴’라는 단어가 전과 다른 깊이로 다가왔다. 담담히 받아들이려 해도 떠밀리는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하지만 배구를 향한 그의 열정을 응원이라도 하듯 벼랑 끝에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늘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싶던 그에게는 해외 경험까지 더해 두 단계 더 성장할 기회였다. “입단 논의가 오갈 때부터 유튜브를 통해 일본 리그 경기를 쉴 새 없이 찾아봤습니다. 같은 아시아 국가지만, 우리나라 배구와 많은 부분이 달라요. 그래도 한 번 해보자 싶었죠. 아직 선수로서 배우고 이루고 싶은 게 많으니까요.” ‘나고야 울프독스’와 1년 계약을 맺은 윤봉우 선수는 오는 10월부터 내년 5월까지, 일본에서 2020-21시즌을 보낼 예정이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과 화상 미팅을 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부상과 몸 상태를 확인하는 질문에 “이 나이에 아프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배구할 수 있을 정도로만 아프다”고 답했다. 그의 열정과 의지는 화면을 넘어 전해졌다. ▲배구선수 윤봉우 동문(체육학과 00)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 그리고 나의 배구 윤봉우 선수가 배구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전국은 그야말로 농구 열풍이었고 어린 그 역시 친구들과 농구를 하며 놀았다. 중학교 때 이미 186cm 큰 키에 점프를 잘하는 그를 체육교사가 눈여겨봤고 그렇게 우연히, 하지만 운명처럼 배구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배구를 하기 위해 고향인 여수에서 목포로 유학길에 올라야 했어요. 처음엔 한 달만 하고 딱 그만둘 생각이었죠. 하지만 배구가 좋아졌습니다. 6명의 선수가 코트 안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멋졌어요. 한양대에 와서는 배구가 더 재밌어졌고요. 추억이 참 많아요.” 그렇게 배구를 시작한 지 어느새 26년, 프로선수로 뛴 지도 19년이 됐다. 그는 오랜 기간 코트에서 뛰었지만 하면 할수록 더 빠져든다고 귀띔했다. 배구는 그의 인생이나 다름없다. 배구는 선수의 신장에서 나오는 높이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시선과 순발력,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수 싸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각 구단에서 시스템을 마련하고 분석에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다. 윤봉우 선수는 배구를 더 잘하고 싶어 15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분석 시스템을 구입해 활용해왔다. ‘내가 잘하려면 상대편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더불어 나이와 상관없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영양제를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체중과 수면 관리, 훈련이나 경기 후 체력 회복에 힘을 쏟았다. 지금까지 그가 이뤄낸 성과는 그렇게 밤낮없이 부지런히 분석하고, 훈련하고, 자기관리에 매진한 결과다. 누구나 때가 되면 나이가 들고 노쇠해진다. ‘예전 같지 않다’는 유행어를 달고 살게 될 때쯤이면 대부분 낯선 설렘보다 익숙한 평온함에 안주하고자 한다. 하지만 도전도 열정도 결코 젊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국내 최고령 현역 센터 윤봉우 선수의 행보가 증명하듯 말이다. 또 다른 기록으로 채워질 내일, 그렇게 새로운 도전과 배움으로 더 깊고 넓어질 윤봉우 선수의 배구를 응원한다. 글 김현지 | 사진 손초원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가을호(통권 제25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사랑한대 2020년 가을호(통권 제255호) 보러가기

2020-08 16 중요기사

[동문]이문한 동문, 검사로서 공익을 위해 힘쓰다... 현재 고양지청장으로 근무 중

검사로서 사익보단 공익을 위해 일해 온 이문한(법학과 90) 동문. 오랜 시간 법조인의 길을 걸어온 이 씨는 다양한 사건을 맡으며 검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으로 근무하며 나라와 국민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의 학창 시절부터 현재, 그리고 법조인을 꿈꾸는 한양인들을 위한 조언까지. 이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헌법을 전공한 이문한(법학과 90) 씨는 지난 2월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문한 씨 제공) 이 씨는 목표했던 한양대에 입학한 순간, 인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좋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 그치고 싶지 않았다"며 "스스로 먼저 인재가 될 때, 학교가 더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양을 각별히 사랑한 이 씨에겐 학교에서의 모든 것이 추억이었다. 이 씨는 1학년 때 고시반 친구들과 한양대 음악대학 앞에서 막걸리 주점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주점을 하면 수익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 술과 음식을 판매하지 않고 우리끼리 먹고 놀아서 돈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당시의 추억을 회상했다. 한대신문 등 대학 시절 다양한 경험을 한 이 씨는 행동과 학문을 동시에 갖출 수 있는 법조인을 택했다. 이 씨는 한양대 고시반 기숙사에서 주로 생활하며 대학 재학 기간 사법고시에 대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이 씨는 제37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이 씨는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바꿀 수 있는 건 행동과 학문뿐”이라며 “법이라는 규율을 통해 사회를 정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직업이 검사라 생각해 23년 동안 검사로 재직했다”고 말했다. 이 씨의 가치관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 씨는 검사가 된 후, 사익보단 공익과 관련된 사건을 우선시했다. 그는 노동, 선거 등 사회 현상과 관련 있고, 동시에 공공성이 큰 사건을 담당했다. 이 씨는 "검사의 기본 덕목은 국민들을 향한 애정"이라며 "사회 현상에 관심을 두고, 국민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직업이 검사"라고 말했다. 이 씨에게서 법조인이 갖춰야 할 덕목도 들어볼 수 있었다. 그는 여러 덕목 중 '자중, 절제, 예의염치'를 꼽았다. '자중과 절제'는 법에 대한 큰 권한을 가진 법조인이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절제하며 자신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이 씨의 가훈이기도 한 '예의염치'를 실천하기 위해선 국민에게 성심성의껏 예를 갖추고 정의로워야 한다. 또 청렴한 공직자로서 부끄러울 짓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생활법률' 교양 과목을 듣는 학생들이 황현영(왼쪽 두 번째) 교수와 함께 현장 체험으로 고양지청에 방문했다. 당일 이문한(가운데) 씨는 학생들에게 고양지청에 대한 소개와 함께 견학을 진행했다. (이문한 씨 제공) 이 씨는 지난 2월부터 고양지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양지청은 고양시와 파주시를 관할하고 있다. 이 씨는 고양지청의 특징으로 ‘남북교류의 중심이 되는 것’을 꼽았다. 남북교류 과정에서의 불법행위(남한 국민에 대해서만 다룸), 대북 전단 살포와 같은 문제들을 고양지청에서 다룬다. 이 씨는 “지청장으로서의 개인적인 목표는 고양지청을 남북교류와 관련된 법률관계를 다루는 전담 청으로 만들고 싶다”며 “고양지청 검사들은 남북 관계나 통일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법조계에서 일한 이 씨에게 가장 보람된 사건은 한 지방에서의 불법 선거운동이었다. 이 씨는 횡행했던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수사와 각종 대비를 통해 당시 실세 의원이었던 전직 시장을 처벌했다. 해당 과정에서 불법 선거운동의 양이 반으로 줄었고, 이 씨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그는 “불법 선거운동 사건을 담당하며 사회가 변화하는 것을 체감했다”고 뜻깊은 경험담을 전했다. 법조계에 종사하며 힘든 순간도 있었다. 이 씨는 “우리나라의 사법 시스템이 국민을 위한 사법 시스템으로 정착되지 못해 아쉽다"며 "검찰이나 법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국민들의 비난을 받을 때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서 “국민들이 살기 좋고 나라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형사 사법 체계가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한양인들에게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고 노력한다면, 분명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씨는 법조계에 종사하길 원하는 한양인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이 씨는 자신만의 가치 기준과 철학을 중요시했다. 그는 “내가 맡은 일을 어떤 식으로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자신의 답을 찾아야 한다”며 “자신은 남이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채워야 한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 지청장은 “법 기술자로 끝나지 않으려면 자신이 법조인이 되려는 근본적인 이유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경험과 인문학적 소양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법조인으로서 검사나 공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그의 계획은 두 가지다. 공익적인 일과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그는 법조인으로서 우리 사회의 법률 서비스 취약 분야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씨는 “학생들이 방향을 잃고 고민할 때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멘토 역할을 하고 싶다"며 "법 과목이나 진로에 대한 특강을 통해 학교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한양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전했다. 글/김수지 기자 charcoal6116@hanyang.ac.kr 사진/류서현 기자 ideal1440@hanyang.ac.kr

2020-08 07 중요기사

[동문]장기민 동문, 저서 『홍대 앞은 왜 홍대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할까』로 작가의 길에 발을 내딛다

사람들은 홍대 앞에서 약속을 잡지만 그 장소가 남의 학교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점심을 먹기 위해 코앞에 있는 맥도날드보단 길 건너의 서브웨이를 간다.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은 디자인 경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디자인 경제란, 여러 선택을 통해 디자인되는 우리의 삶과 일상 속 경제생활 간의 관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립된 개념이다. 장기민(산업디자인 석사과정) 씨는 독자들이 새로운 시각을 통해 디자인 경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지난 7월 『홍대 앞은 왜 홍대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할까』를 출간했다. ▲장기민(산업디자인 석사과정) 씨는 지난 7월 책 『홍대 앞은 왜 홍대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할까』를 출간했다. 장 씨의 책은 교보문고 자기계발 TOP 10에 진입하며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중이다. 학창 시절부터 디자인에 관심이 있던 장 씨는 자연스럽게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했다. 입학한 그해, 대학 공부를 병행하며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느낀 장 씨는 휴학계를 냈다. 휴학 후 그는 ‘케비네이드’라는 작은 회사를 설립했고, 해당 회사를 아이디어 상품 전문업체인 ‘디자인링크’ 회사로 발전시켰다. 장 씨는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다양한 성과를 냈다. 현재는 M&A를 통해 ‘디자인링크’를 매각한 후, 디자인 경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 경제 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인 장 씨는 ‘디자인 경제’에 한 획을 긋고 싶다는 야망이 있었다. 장 씨는 디자인이 기업 입장에서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은 후, 소비자 입장에서 디자인의 개념을 재정립하고자 했다. 장 씨는 소비자의 측면에서 디자인 경제를 논한 이번 도서를 통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글솜씨가 좋아 언론사와 학보사에 디자인 경제에 관한 칼럼을 기고했던 장 씨. 그는 마침내 작가로서 자신의 책을 출간했다. 장 씨는 “글쓰기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며 “글 쓰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 집필도 빠르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 씨는 과거 비즈니스 경험을 살려 집필부터 출판까지의 과정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는 “여러 출판사 중 나의 목소리를 가장 잘 수용할 수 있는 출판사를 선택해 책을 수월히 출간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장 씨는 다양한 일상의 모습을 디자인과 경제의 시각으로 그려냈다. 책을 통해 독자들이 디자인의 눈으로 경제를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리드리드출판 제공) 책은 총 8파트로 구성돼 있으며 디자인과 경제를 융합해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드러냈다. 장 씨는 모든 파트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독자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배달의 민족의 경제학’을 언급했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는 한 일례로 "샴푸 시장에서 1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타겟층을 설정하면 어디서든 억지로라도 1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씨는 독자들에게 김 대표의 사례를 통해 “모두에게 인정받기보단 한 명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장 씨는 신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독자들의 시각이 좀 더 새롭게 디자인되길 바랐다. 장 씨는 “순간의 선택은 디자인과 관련 있다”며 “선택을 통해 자신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디자인은 의미 부여의 과정이에요. 똑같은 재료와 공법으로 가방을 만들어도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죠.” 이어서 독자들에게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없는지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장 씨는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열었지만, 후배들을 위해 지난 15년부터 ERICA 캠퍼스에서 ‘디자인창업론’ 강의를 재능기부 하는 중이다. 장 씨는 과거 창업 경험자로서 그리고 ‘디자인링크’ 회사의 대표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장 씨는 “대학 재학 중 사회에서 많은 경험을 하길 바란다”며 한양인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끝으로 장 씨는 “오랫동안 꿈꾼 것을 실현했다”며 출간 소감을 응축했다. 장 씨는 “부지런히 자신의 꿈을 향해 준비하는 사람이 승리한다”며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출판된 책은 청년층이 주 타겟층이에요. 오는 9월 청소년들을 위한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작가로서 새로운 길을 걷게 된 장 씨의 미래가 기대된다. 글/권민정 기자 mj0863@hanyang.ac.kr 사진/이윤서 기자 cipcd0909@hanyang.ac.kr

2020-07 28

[동문][ERICA's Power] 제34대 ERICA 총학생회장 전용기,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다

ERICA 총학생회장 전용기,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다 전용기(생할스포츠학부 10)동문 21대 국회에 입성한초선의원은 151명이다. ‘일하는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바람이 큰 만큼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높다. 특히 2030 국회의원에게는 기성정치와는 다른 변화를 주문한다. 전용기 의원은 이번에 당선된 20대 국회의원 두 명중 한 명이다. ERICA 총학생회장에서 21대 국회의원으로 거듭난 그에게 새로운 정치, 청년 정치에 관해 물었다. ▲전용기(생할스포츠학부 10)동문 청년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20대 젊은 의원 21대 국회에 당당하게 입성한 전용기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했다. 1991년생인그는 더불어민주당 역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이자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최연소 남성 국회의원이다. "당선이 확정됐을 때 실감이 안났습니다. 막상 국회에 들어간다고 생각히니 책임감이 너무나 크고 무겁게 다가왔어요.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으로 3~ 4년간 일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는데, 선배들이 지난 10여 년간 2030 국회의원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당선은 그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혹독한 비례대표 경선을 뚫고 6번을 받으며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기적이다, 정당 활동 4년 차의 젊은이에게 누가 표를 준것이냐며 모두가 놀라워했다. 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들은 다름 아닌 전국의 청년 당원들이었다. 80만 선거인단의 1자 경선과 중앙위원 투표에 의한 2차 경선 동안 청년 당원들은 그의 가장 강력하고 든든한 힘이었다. 그 결과, 국회의원후 보를 비롯해 시장, 도지사 등 단체장으로 구성된 중앙위원 투표에서 당당하게 3등을차지했다. 청년 당원들의 바람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한 중앙위원께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표를 받았냐며 무척 놀라셨습니다. 시실 그분도 저를 선택하셨지만, 100% 사표로 생각히셨다고 합니다. 저를 찍어달라는 청넌들의 전화를 여러 번 받으셨다고 해요. 제가 정치 경력이 짧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히는 젊은이인지 잘 모르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청넌 당원들의 전화가 계속해서 오더래요. 분명 이유가 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선택하셨지만, 그런 결괴를 예상하지는 못한 거지요." 선거 도중 더불어시민당으로 당적을 바꾸고 순번도 16번으로 밀리는 위기를 겪었지만, 많은 국민의 선택으로 결국 21대 국회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다. 그의 당선은 2030 국회의원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꾸준히 공을 들인 선배들의 노력, 그리고 자신들과 공감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만들고자하는 청년들의 엽원이 모인 결과물인 셈이다. ▲전용기의원은ERICA 총학생회장으로서 학과 통폐합문제로 반대 여론이 거셌던 '프라임사업 21'의 성공적 합의를 이끌어낸 주역이다. 더 넓은세상! 한양대는 인생의 터닝포인트 생활스포츠학부 10학번인전용기 동문은 학창 시절,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바른 생활 청년'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볼링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체육특기자로 대학에 진학했다. 한양대를 선택한 이유는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스스로와 했던 약속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업은 빠지지 않겠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아무리 전날 술을 많이 마셔도 출석은 꼭 했습니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한이 있더라도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성실하게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높은 학점을 받았고, 차석으로 졸업할 수 었었다. 학생회 활동은 전역 후 시작했다. 처음부터 학생회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선배의 제안에 공부 핑계를 대며 일주일 동안 도망다녔다. 하지만 공부와 병행할 수 있다는 말에 더는 핑곘거리를 찾을 수 없어 동참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데다 성격이 급해서 일처리가안되면 못 견디는 타입이라 워커홀릭처럼 일했다. 임원으로 시작한 활동이 어느새 체육과부회장, 예체능대학 학생희장, ERICA 총학생회장까지 이어졌다. ▲'프라임 사업21' 학생총회 모습 2016년 제34대 ERICA총학생회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프라임 사업과 축제 문화의 개혁이다. 당시 프라임 사업은 학과 통폐합의 문제로 반대 여론이 거셌다. 그런 만큼 학생들이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학생총회를 통해 1,300 명의 학생이 직접 투표했고, 찬성률 7,8.7%라는 결과를 얻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은 최고 의결기구를 만들어 대의민주주의를 이뤄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ERICA는 유일하게 성공적인 합의를 끌어낸 대학으로. 구성원과의 합의 부문에서 만점을 받고 심사를 통과했다. 30년동안 민주광장에서 개최하던 축제를 대운동장으로 변경한 것도 파격적인 행보였다. "민주광장의 규모가 작다 보니 안전사고의 문제가 늘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축제 장소를 대운동장으로 변경했습니다. 여러 반대에 부딪혔지만 하나하나 설득해나갔습니다." 축제 첫날 폭우가 내려 임원들과 함께 삽을 들고 대운동장 바딕에 물길을 파낸 일화는 유명하다. 그때부터 축제 때 비가 오면 수로를 파는 것이 전통이 됐다. "제게한양대는 인생의 터닝포인트입니다. 대학에 와서 비로소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게 됐습니다. 각계각층의 친구들과 함께 많은 것을 만들어나갔고,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접했습니다. 아마 그때 학생회 활동을하지 않고사 회에 대한 목소리를내지 않았다면 정치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을 거예요." ▲전용기(생할스포츠학부 10)동문 세대 대표성 띤 청년 정치인의 활약 기대 전용기 의원은 2017년 졸업 후 대학원(경영컨설팅학과 17)에 진학했고,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청넌위원회 미래세대공동본부장을 맡으며 정계에 첫빌을 내디뎠다. 이어 청년정책위원회 연구위원, 전국대학생위원희 부위원장을 거쳐 위원장으로 훨동했다. 이제 막 국회에 입성한 그는 청년 정치, 새로운 정치를 말한다. 이는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길지 않은 그의 정치 경력을 보고 경험 부족을 우려하지만, 살아온 시대가 다르면 생각도 다르기 마련이다. "기성세대의 시각만으로 청년 문제를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문제를 풀 때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제대로 풀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크게 보면 약자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세대 대표성을 띤 청넌년정치인으로서 저희 세대가 직면해 있는 어려운 상황들을 풀어보고싶습니다." 그는 정치를 '생할'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만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누군가를 대변히는 생활이 바로 정치라는것이다. "정치에 내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를 통해 토론과 설득히는 방법을 배웠으면 합니다. 그렇게 시각을 바꾸면 북유럽처럼 건강한 생활정치가 정착할 수 있을 거예요." 새내기 국회의원으로서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아직은 모든 것이 조심스럽지만, 때로는 과김하고 개혁적으로 의정 활동을 펼처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전용기 의원. 그가 바라는 대로 "젊은 친구 시키니까 일 잘한다"는 말올들으며 약자를 대변하는 청년 정치인으로, 또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도전과 열정의 아이콘으로 한껏 성장하길 기대한다. 글 오인숙 사진 하지권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HY ERICA(하이에리카)'의 2020년 여름호(통권 제9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HY ERICA(하이에리카) 2020년 여름호(통권 제95호) 보러가기 ▶[[한양위키]]에서 'HY ERICA(하이에리카)' ,'전용기' 자세히 알아보기

2020-07 26 중요기사

[동문]유채훈 동문, 팬텀싱어 3 우승팀 라포엠의 리더이자 '전설의 테너' (63)

유채훈(성악과 07) 씨는 지금까지 많은 도전을 해왔다. 팝페라 그룹 에클레시아와 AWESOME에서 다양한 음악 활동을 보여줬다. M.NET ‘트로트 X’와 KBS ‘누가 누가 잘하나’, TV조선 ‘#주세요’ 등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기도 했다. 유 씨는 JTBC ‘팬텀싱어 3’에 참가해 지난 7월 3일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라포엠에서 리더와 테너, 그중에서도 멜로디 위에 화음을 쌓는 하이 테너를 맡고 있다. 중학교 밴드부 보컬부터 한양대 성악과 수석 입학까지 ▲유채훈(성악과 07, 맨 왼쪽) 씨가 속한 그룹 '라포엠'의 모습. (유채훈 씨 제공) 유채훈(성악과 07) 씨는 중학교 재학 당시 밴드부에서 보컬을 맡으며 음악에 입문했다. 중학교 축제 공연이 끝나고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성악을 접하며 포항예술고등학교 음악과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유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나 성악에 재미를 붙였다. 그 후 대학 입시에 최선을 다한 유 씨는 한양대 성악과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유 씨는 "한양대는 내 음악의 뿌리를 찾은 곳"이라고 말했다. 한양대에서의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은 유 씨를 더 성장시켰다. 유 씨는 "대학 생활 중 기억나는 건 수업과 레슨, 연습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양대 재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당시 음악대학 연습실이 밤 10시 30분에 문을 잠그는데, 목이 아파도 연습실에서 가장 늦게까지 있는 것을 멋지다고 생각해 끝까지 버티다 잠들었다"며 "내가 잠든 것을 본 경비 아저씨께서 캔커피를 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도전 끝에 빛을 보다 팬텀싱어 3에서 유 씨는 ‘전설의 테너이자 비운의 테너’로 소개됐다. 여러 그룹에 속하며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소속사와의 계약사기 등의 문제가 연이어 발생했다. 힘든 과정에서 그는 클래식과 팝 등 모든 장르를 완벽히 소화하는 전설의 테너가 됐다. 팬텀싱어 예선에서 부른 ‘IL MONDO’는 조회 수 216만을 기록했다. 윤상 작곡가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의 극찬이 쏟아진 무대였다. ▲유 씨가 '팬텀싱어 3' 예선에서 IL MONDO를 선보였다. (JTBC 제공) 유 씨는 팬텀싱어 3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 결승전 마지막 곡인 ‘The Rose’를 골랐다. 그는 “지금까지 팬텀싱어 3을 하며 받았던 관심과 사랑을 팬들에게 헌정하는 마음으로 불렀던 곡이었다"며 "멤버 모두가 눈물을 참으며 노래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최종 라운드 이후 문자 투표에서 약 20만 표, 온라인 투표에서 15만 표를 받으며 최종 우승팀으로 ‘라포엠’이 선정됐다. 유 씨는 우승 소감을 밝혔다. “우승은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함께 무대에 올랐던 모든 가수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고, 라포엠을 응원해준 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유채훈 씨는 성악과 후배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열심히 하면 된다”며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올 것”이라고 조언을 남겼다. 그는 현재 팬텀싱어 갈라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9월까지 전국 투어 콘서트가 예정돼있다. 9월엔 라포엠 음반 작업을 진행하며 다양한 결과물을 대중들에게 보여줄 계획이다. 글/김수지 기자 charcoal6116@hanyang.ac.kr

2020-06 29 중요기사

[동문]하윤주 동문, 국악으로 아름다운 우리의 선율을 전하다

하윤주(국악과 03) 씨는 정가 보컬리스트로서 우리의 전통을 알리고 있다. 하 씨는 국가 무형 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2018 KBS 국악대상 가악상 수상, 2019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등 우수한 커리어를 가진 실력파 국악인이다. 하 씨는 다양한 형태의 앨범 발매부터 방송활동, 음악극 공연까지 다채로운 방법으로 활동하며 정가의 대중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 하윤주(국악과 03) 씨는 정가 보컬리스트로서 활약하고 있다. (하윤주 씨 제공) 하 씨는 정가 보컬리스트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정가는 正(바를 정), 歌(노래 가)로 바른 노래를 뜻한다. 선조들이 사랑방이나 정자에 둘러앉아 풍류를 읊으며 부르던 노래로 시조에 가락을 붙여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 하 씨는 “정가는 문학과 음악이 만나는 장르”라고 설명했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정가의 가치는 더 빛을 발한다. 느린 선율 속 서정적이고 교훈적인 가사는 음악의 몰입을 높인다. 선조들의 문화와 정신이 그대로 담겨 있어 전통 가치를 계승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뜻깊다. 국악과 노래를 사랑한 소녀는 한양에서 꿈을 키웠고, 한양의 자랑이 됐다. 초등학생 때부터 국악과 노래에 관심이 많았던 하 씨는 석암제 시조창을 배우며, 그간의 실력을 갈고닦아 국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입시 기간에 한양의 상징인 사자에 물리는 꿈을 꿀 정도로 한양대 진학을 원한 하 씨는 열심히 노력해 한양대에 입학했다. 그는 실기 우수자로 선정돼 4년 장학생으로 학교생활을 했다. 덕분에 노래 연습과 학교 수업에 매진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또 많은 교수님의 가르침과 도움은 현재 음악 활동의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학창 시절 동안 발전을 거듭한 하 씨는 국악인을 꿈꾸는 학생에서, 국악을 알리는 자랑스러운 국악인으로 컸다. ▲ 하 씨의 첫 정규앨범인 <추선>에선 고전적인 보이스와 현대적인 음악해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하윤주 씨 제공) 하 씨는 근래 다양한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대표적으로 정규앨범 <추선(秋扇)>과 프로젝트 앨범 <팔도유람>이 눈에 띈다. 추선은 하 씨의 첫 정규앨범이다. 헤어진 여인의 쓸쓸한 마음을 표현한 곡들을 실었다. 정가의 노래기법과 현대적인 음악해석을 동시에 담은 것이 인상적이다. 피아노와 노래로만 이뤄진 추선은 하 씨의 고전적인 보이스와 피아노의 현대적 감성이 조화를 이뤘다. 하 씨는 “정가를 잘 모르는 대중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선율이나 멜로디에 현대적인 요소들을 가미했다”며 “노래에서 채워지지 않은 여백의 소리를 피아노 화성으로 채웠다”고 감상 포인트를 전했다. 이어서 “다양한 음악 장르 간의 협연인 크로스오버를 이번 앨범에 사용했다”며 “다른 장르 아티스트와의 협연을 통해 정가, 나아가 국악의 대중성을 높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하 씨는 에스닉 퓨전 밴드 ‘두 번째 달’과 협연한 프로젝트 앨범 <팔도유람>을 발매하기도 했다. 에스닉 퓨전 밴드란 각 나라의 민족음악을 모토로 하는 밴드의 한 유형이다. 하 씨는 두 번째 달 밴드의 제안으로 <팔도유람> 앨범에 참여했고, 유명 국악인인 김준수 씨, 송소희 씨와 함께 음원을 발표했다. 해당 앨범엔 정가, 판소리, 경기민요 등 한국 전통 성악의 모든 것을 담았다. 이 앨범에선 세 종류의 성악 노래를 들을 수 있다. ▲ 하 씨가 KBS 열린 음악회에서 가수 김윤아 씨의 야상곡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부르고 있다. (KBS 열린음악회 제공) 하 씨는 국악인으로서 대중가요에 도전해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KBS <열린 음악회> 담당 PD에게 대중가요 공연을 제안받았고 어렸을 적부터 즐겨 들은 가수 김윤아 씨의 노래를 선택했다. 하 씨는 “김윤아 씨의 음악 선율과 은유적인 가사를 너무 좋아한다”며 “기회가 생긴다면 김윤아 씨의 곡을 꼭 부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 씨는 김윤아 씨의 여러 곡 중 자신의 목소리를 잘 담을 수 있는 <야상곡>을 선택해 무대에 임했고 대중들의 많은 찬사를 받았다. 하 씨는 음악극에도 출연해 관객과 소통했다. 음악극은 여러 등장인물이 무대에 등장해 연기와 노래를 모두 보여줄 수 있는 극의 한 종류다. 그는 지난 3년간 음악극 <적로>라는 작품에서 산월 역을 맡아 공연했다. 적로는 3명의 주인공이 음악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따뜻한 이야기다. 하 씨는 “해당 작품에 판소리와 정가를 전공한 배우들이 출연했다”며 “한 무대에서 국악의 2가지 소리를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전했다. ▲ 하 씨는 자신의 개인 유튜브 채널인 <하윤주>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하윤주> 제공)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국악계도 오프라인 공연이 어려운 상황이다. 하 씨는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현재 라이브 방송을 통해 공연을 공유하며 관객들과의 랜선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라이브 방송 같은 온라인 공연 시스템은 다양한 관객 확보 및 국악 접근성을 높이는 데 고무적이다. 하 씨는 “눈앞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진 못하지만, 시공간의 장벽을 넘어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어 좋았다”고 전했다. 하 씨는 현재 <하윤주>(클릭 시 해당사이트로 이동)라는 이름으로 개인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소소한 일상과 공연 진행 과정을 담은 영상들이 있다”며 “한 번씩 방문해 ‘좋아요’와 ‘구독’을 눌러 주시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 씨는 방송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KBS 동요 프로그램인 <누가 누가 잘하나>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동요와 민요를 함께 부르고 있다. 이를 계기로 창작 동요 작곡가인 REMA 씨와 인연이 닿아 <노란 발자국>이라는 앨범도 발매했다. MBN에서 제작하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경쟁하는 경연 프로그램에 국악인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그는 해당 프로그램에서 많은 대중에게 정가를 알릴 예정이다. 앨범 발매도 꾸준히 이어간다. 오는 9월에 나태주 시인의 시로 <황홀극치>라는 새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다. 하 씨는 국악인을 꿈꾸는 한양인들에게도 응원의 말을 남겼다. 하 씨는 “자신이 가진 음악에 대한 열정과 소신을 지키면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며 “기회는 항상 찾아오니 열심히 노력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끝으로 그는 “소신을 갖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음악이 힘과 치유가 됐으면 좋겠다”고 국악인으로서 포부를 밝혔다. 글/ 정연 기자 cky6279@hanyang.ac.kr

2020-06 15

[동문][사랑한대] 우리 3대가 모이면? 시대를 아우르는 한양 동문회!

▲(왼쪽부터) 한윤재 학생(전자공학 20), 한상준 동문(전기공학 56), 한형섭 동문(전기공학 87) 우리 3대가 모이면? 시대를 아우르는 한양 동문회! 간혹 부모와 자녀가 대를 이어 한 대학을 졸업하는 경우는 있지만, 3대가 나란히 같은 대학 출신인 경우는 드물다. 한상준 동문, 한형섭 동문, 한윤재 학생 가족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귀한 케이스이다. 올해 한윤재 학생이 한양대학교에 입학하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녀가 모두 한양의 동문이 됐다. 한양의 꿈 안에서 뭉친 3대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소중한 인연, 특별한 필연 올해 한양대는 특별한 새내기를 맞이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양인이 된 한윤재 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56학번 한상준 동문과 87학번 한형섭 동문, 그리고 20학번이 된 한윤재 학생. 이들 3대는 같은 한양대 동문일 뿐 아니라 같은 전공 선후배 사이가 됐다. 가족 3대가 같은 대학, 같은 전공 동문이 된다는 것은 진귀하고 특별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손녀가 한양대 전자공학부에 입학하게 됐다고 들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아들에 이어 손녀까지 저와 함께 한양대 일원이 되 다니 참 감사한 일이죠. 의대나 법대를 제외하고 기술계통에서 같은 대학, 같은 과를 3대가 졸업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지 않을까요?” 한상준 동문은 본인의 뒤를 이어 걷는 자손들의 모습에 뿌듯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늘 3대가 동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지만, 그것이 현실로 이뤄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상준 동문은 기쁜 마음으로 주변에 자랑을 많이 했다고 귀띔했다. ▲한윤재(전자공학 20) “사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같은 대학에 입학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늘 전기나 전자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여러모로 한양대 공대가 우수하다 보니, 어느새 한양대 전자공학부 입학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한윤재 학생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입시 준비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한양대는 이미 친숙한 곳이었다. 평소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한양대에 대해 무수히 들어온 탓이다. 또 한양대를 졸업한 가족들을 흠모하는 마음도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심중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아마도 한형섭 동문일 것이다. 그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양대를 택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뭔가 만들고 조립하는 것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멀쩡한 라디오를 부쉈다가 다시 조립하기도 했죠. 그런 제 모습에 아버지께선 은근히 제가 본인의 뒤를 잇길 원하셨어요. 그래서 형은 한의사였던 조부의 영향으로 치의대에 진학하고, 저는 한양대 전기공학과에 진학하게 됐지요.” 한형섭 동문은 “스스로 결정한 딸과 달리, 나는 반강제였다”고 유쾌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그에게 아버지인 한상준 동문은 엄하면서도 자랑스러운, 그래서 언제나 닮고 싶은 대상이었다. 존경하는 이를 따라 걷는 길은 그가 스스로 택한 필연이었다. 자랑스러운 가족의 이름으로 이들 가족과 한양의 소중한 인연, 그 출발에는 한상준 동문이 있다. 경상북도 상주의 모범생이었던 한상준 동문은 1956년에 한양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사실 당시의 한양대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이름도 ‘한양공과대학’이었고 캠퍼스에는 건물 5~6개가 전부였다. 지금에 비하면 시설도 위상도 떨어졌지만, 교수진과 학생들의 뜨거운 열정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아직도 왕십리에서 하숙하며 등하교하던 일과 전기과, 기계과, 토목과 등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계단식 강의실에 앉아 공부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한상준 동문은 여든세 살의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과거의 시간을 또렷하게 그려냈다. 대학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는 그는 한양에서 채운 지식을 바탕으로 대한석탄공사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독일에 머물며 자동제어 분야를 연구했다. ▲한상준(전기공학 56) 8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가정이 석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했다. 자연히 연탄공장들이 큰 호황을 누렸는데, 잦은 기계 고장이 골칫거리였다. 한상준 동문은 한 연탄공장 사장의 부탁으로 고장이 나지 않는, 과부하 전에 미리 정지해 사고를 방지하는 기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업계 이슈가 되며 대형 회사들까지 기계 제작을 의뢰해왔다. 현 금성제어기(주)의 전신, 금성제어기제작소를 설립하게 된 계기였다. “당시 국내에서 자동제어 분야로는 우리의 경쟁자가 없었어요. 국내 산업발전과 함께 역동적으로 성장한 시기였죠. 회사가 안정화된 뒤로는 세계 표준에 부합하는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한상준 동문은 지금까지 연구 비용으로 1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1978년에 창업해 올해로 43주년을 맞은 금성제어기(주)는 국내외 대형 공장들의 배전반과 전기 시스템,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며 국가 산업화에 이바지해왔다. 현재는 한형섭 동문이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이끌고 있다. “밑에서부터 하나씩 배워 사무, 전선, 배선, 철 가공, 조립 등 회사의 모든 업무를 경험해봤다”는 한형섭 동문은 “국내외 배전반 시장 선도를 목표로 회사의 제2 도약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한 시대의 발전을 이끈 데 머물지 않고, 대를 이어 비전을 이뤄가는 중이다. 한양의 품에서 꿈꾸다 ▲한형섭(전기공학 87) 한상준 동문은 지난해 8월 ‘제10회 자랑스러운 한양공대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상은 국가 산업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나눔을 통해 사랑을 실천한 한양대 공과대학 동문에게 수여하는 것이다. 한상준 동문은 2012년부터 꾸준히 모교에 기부를 이어왔는데, 지금까지 2억 3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전달했다. 현재 6명의 학생에게 매월 50만 원씩 생활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놓는 학생들이 없도록 돕고 싶다는 게 한상준 동문의 바람이다. ‘항상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라’는 말을 가훈으로 삼고 몸소 ‘사랑의 실천’을 행하고 있다. “꾸준히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신다는 것과 ‘자랑스러운 한양공대인상’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생각한 것보다 할아버지가 훨씬 더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한윤재 학생은 “할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도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손녀이자 딸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이 남에게도 행복이지만, 자신에게도 행복이 된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한형섭 동문은 기회가 된다면 자신도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행보를 따라 이웃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 아울러 딸인 한윤재 학생이 한양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의 꿈을 찾아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다. 거창한 교육보다 평소 부모의 생각과 행동이 자녀를 키우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한양의 품에서 꿈을 키우고 이뤄낸 부모를 보며 스스로 뒤를 이어 걷는길. 한양과 함께하는 이들 가족의 올곧은 발걸음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글 김현지 | 사진 손초원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여름호(통권 제254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사랑한대 2020년 여름호(통권 제254호) 보러가기

2020-06 01 중요기사

[동문]전용섭 동문, 신한은행 한양대 지점장으로 학교 발전에 힘쓰다

신한은행 한양대학교 지점장으로 근무하며 한양의 발전을 위해 노력 중인 전용섭(경제학과 87) 지점장. 지난 2019년 1월 지점장으로 부임한 그는 기부금 쏠(SOL) 이체방식, 안면 인식결제 시스템(Face Pay)과 신입생 학생증 체크카드 발급 방식 개선 등 다양한 업무 추진을 통해 한양 구성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인터뷰 중 전 지점장은 “후배들이 모교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고 열심히 해주길 바란다”며 “궁금한 점이 있거나 술 한 잔 생각나면 언제든 찾아와도 된다”고 선배로서의 친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전용섭(경제학과 87) 지점장은 신한은행 한양대학교 지점장으로 부임한 후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양대 학생부터 신한은행 한양대 지점장까지, 한양과 오랜 세월을 함께하고 있는 전 지점장은 “한양은 인생에서 운명이 맺어준 존재”라며 애정을 보였다. 그만큼 한양에서의 매 순간이 그에겐 특별한 기억이었다. 특히 “캠퍼스 낭만 중 하나인 대학교 축제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며 “사랑의 실천이라는 건학 정신을 가슴에 새기며 작은 사랑의 실천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전 지점장은 이어 “대학 풍경이 많이 변한 것 같다”며 “예전과 비교해 낭만적인 분위기를 찾기 어려워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전 지점장은 1993년 신한은행에 입행해 2019년 신한은행 한양대 지점장이 됐다. 오랜 시간 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해온 그의 직장생활 노하우는 무엇일까? 전 지점장은 1%라도 가능성 있는 일이라면, 포기하지 않고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는 은퇴한 선배에게 ‘지독한 놈’이라 불릴 정도로 모든 일에 열정과 노력을 쏟았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훌륭한 직장생활을 해온 전 지점장의 모습은 많은 한양 구성원에게 귀감이 된다. 한양대 학생이었던 전 지점장은 약 30년 후 신한은행 한양대학교 지점의 지점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모교 지점에서 근무해보고 싶었다”며 “모교 지점으로 발령받아 좋았고 모교 출신 동료들로부터 축화 전화도 많이 받았다”고 발령 당시의 소감을 밝혔다. 전 지점장은 현재 신한은행 한양대학교 지점장으로서 등록금 및 전반적인 자금 운용과 한양 구성원들을 위한 다양한 금융 서비스 제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신한은행 한양대학교 지점장으로서의 성과 디지털 트렌드와 언택트 비즈니스는 금융계에서 중요한 흐름이다. 전 지점장은 현 상황 속, 은행 기관이 어떻게 하면 학교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현재 학교 측과 은행과의 협업을 통해 ‘기부금 쏠(SOL) 이체방식’과 ‘안면 인식결제(Face Pay)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부금 쏠(SOL) 이체 방식’은 신한은행 모바일뱅킹 쏠(SOL)을 통해 본인 계좌에서 학교의 기부금계좌로 간편하게 이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대학 입학 후 모든 한양대 학생들이 신한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졸업 및 사회 진출 이후에도 해당 계좌에서 지속적해서 거래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전 지점장은 “아직 시작 단계”라며 “33만의 모교 동문 중 신한은행을 거래하는 동문이 쉽게 기부금 문화에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기부금 쏠(SOL) 이체방식’ 사업에서 한양인들을 향한 전 지점장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 안면 인식결제(Face Pay) 시스템 이용을 위해 은행 방문 후 얼굴 정보를 등록하는 모습. 안면 인식결제 시스템은 얼굴이 지갑이 되는 결제환경이다. 은행 계좌를 가진 고객이 은행에 방문해 얼굴 정보를 최초 한 번만 등록하면, 학교 내의 CU 편의점 3곳과 식당 6곳에서 얼굴 인식만으로 자동결제가 가능하다. 카드 결제 및 현금 결제 등 결제를 위한 대기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또 접촉하지 않고 결제하기 때문에 코로나19 등과 같은 바이러스 감염 우려도 낮아진다. 전 지점장은 “해당 결제 시스템은 신한은행 지점 중 한양대가 처음으로 런칭해 언론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며 “첨단기술을 선도하는 학교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프로모션 기간에는 결제 시, 할인 혜택도 제공하고 있으니 이용해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전했다. 지점장 부임 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신입생 학생증 체크카드 발급 방식을 개선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본래 학교는 신입생들이 약 10일이라는 정해진 기간 내에 은행 지점에 직접 방문해 일일이 신청 및 발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수많은 신입생이 짧은 기간 안에 모두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 고객들은 오랜 대기 시간을 견뎌야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직원들 또한 과중한 업무로 인해 병이 날 정도였다. 전 동문은 지점장 부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 측의 디지털부서와 학교 학생처와의 협의 끝에 카드 발급 방식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방식으로 변화시켰다. 결과적으로 작년에는 70%, 올해는 100% 온라인 방식으로 학생증 체크카드를 발급했다. 전 지점장은 “처음엔 온라인 시스템의 도입을 걱정했지만, 혼란 없이 지점의 영업 방식을 향상할 수 있어 보람 있다”고 말했다. ▲ 전용섭 신한은행 한양대 지점장이 뉴스H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점장 생활 중 어려운 점도 있었다. 은행업 특성상 타 은행 지점과의 경쟁 강도가 높은 것이 고충이었다. 전 지점장은 모교 교직원과 임직원 및 고객들의 사랑으로 부임 이후 좋은 결과를 냈다. 그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지점 가족들 덕분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지점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끝으로 사회 진출을 앞둔 한양인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전 지점장은 “요즘 취업하기가 너무 어려워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자신의 장점과 경험을 잘 어필하는 열정적인 사람을 기업에서 선호한다”고 선배로서 조언했다. 또한 “본인이 원하는 분야의 회사 선배들에게 조언을 얻고 미리 준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응원의 말을 남겼다. 전 지점장은 앞으로 한양 구성원들을 위해 지점장으로서 노력할 계획이다. 그는 “은행에 훌륭한 선배들이 많다”며 “학교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선배들이 재학 중인 후배들의 멘토가 되어 후배들에게 다양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제도를 제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 정연 기자 cky6279@hanyang.ac.kr 사진/ 류서현 기자 ideal1440@hanyang.ac.kr

2020-05 14

[동문]청년 정치를 이끌어나갈 주역, 국회의원 전용기 동문을 만나다. (1)

▲ ERICA 생활스포츠학부 10 전용기 동문 PRIME(PRogram for Industrial needs Matched Education,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사업 유치, 교내 축제문화 개혁의 시작,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의 발전 그 중심에는 전용기 동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16년도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총학생회장직을 거쳐, 이번 총선을 통해 더불어 시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전용기 의원(생활 스포츠학부 10)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젊은 90년대생 의원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계시는데, 정계 진출을 다짐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A. 원래는 교직 이수를 통해 교사라는 꿈을 이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 국정농단 사건들을 지켜보며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부터 선봉장이 되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연합 시국선언, 더불어민주당 전국 대학생 위원장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계 진출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Q.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에 날개를 달아준 가장 큰 변화, 바로 프라임 사업이 있었습니다. 당시 찬성률 78.7%라는 쾌거를 거두셨는데 이 과정에 대하여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사실 당시 프라임 사업은 학생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업이었습니다. 특히 학과 통폐합의 위험이 존재하는 문과 계열 학생들에게 예민할 수 있는 문제였고 반대 여론도 거셌습니다. 그랬기에 마구잡이식 통과가 아닌, 학생들에게 이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기회를 마련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교무처장님께 프라임 사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고, 공동행동까지 마다하지 않겠다는 패기로 임했습니다. 여러 노력의 결과, 3월 16일 학생총회를 통하여 1,300명의 학생이 직접 투표로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학생총회를 통해 구성원과의 성공적인 합의를 끌어내 프라임 사업을 유치한 학교는 우리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만큼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 2016년 3월에 진행되었던 학생총회 장면 Q. 대학생 시절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으신가요? A. 2016학년도 총학생회장을 맡으며 진행했던 축제문화의 개혁이 기억에 남습니다. 개교 이후 30년 동안은 민주광장에서만 축제를 진행했었습니다. 그러나 민주광장의 규모가 작다 보니 안전사고의 문제가 늘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축제 장소를 대운동장으로 변경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추억에 남는 해프닝이 있었어요. (웃음) 대운동장은 흙바닥이기 때문에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어버려요. 그런데 축제 첫날, 폭우가 내렸어요. 주위에서는 ‘축제 첫날은 포기하라’라고 말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직접 삽을 들고 대운동장 바닥에 물길을 파내며 결국 성공적으로 축제를 진행할 수 있었답니다. 몸은 고되었지만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게 되어 우리 학교만의 축제가 아닌 안산시의 축제로 자리를 잡는 기틀이 되어주었고 여러 안전 문제 및 길거리 쓰레기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어서 뿌듯했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Q. 이제 이번 달 말, 30일부터 본격적인 임기가 시작됩니다. 앞으로의 의지에 관해 이야기해주세요. A. 어깨가 무겁습니다. 청년 세대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들에 목소리를 내고자 많은 준비를 하고 있으며, 지지해주신 많은 분을 위한 마음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음 2030 의원들이 나아갈 길을 만들고자 합니다. Q.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도전과 열정의 아이콘입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우리도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건 꼭 하자’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런저런 걱정이 많을 테지만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자기 뜻대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너무 휘둘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중에서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만 듣고 나에게 필요 없는 이야기는 과감히 버려도 좋아요. 창업을 시작해보는 것도, 여러 개의 직업을 가져보는 것도 좋습니다.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는 태도를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청년 정치를 이끌어나갈 주역, 전용기 의원의 넘치는 열정과 도전정신은 앞으로 우리 사회를 더 밝게 비추는 등불이 될 것이다.

2020-05 12 중요기사

[동문]최예근 동문,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전하는 만능 싱어송라이터 (3)

최예근(실용음악학과 15) 씨는 보컬, 기악, 작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적 역량을 보여주는 싱어송라이터다. 장르 제한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음악 안에 담아 자신의 색깔로 표현한다. 최근엔 다양한 음악 방송 출연을 통해 많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최 씨는 뮤지션으로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중이다. ▲ 최예근(실용음악학과 15) 씨는 실용음악학과에 진학해 전문적인 음악 지식을 배웠다. (최예근 씨 제공) 5살 때부터 가수를 꿈꾼 최 씨는 중학생 시절에 참가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K팝스타'를 계기로 가수의 꿈을 구체화했다. 어린 나이에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해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최 씨. 최 씨는 큰 무대를 경험하며 음악 지식의 필요성을 느꼈고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실용음악학과에 진학했다. 최 씨는 실용음악의 매력에 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실용음악은 말 그대로 실용적인 음악을 교육하는 학과”라며 “장르의 제한 없이 다양한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학과를 향한 최 씨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최 씨는 작곡과 편곡 작업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상당한 실력을 갖춘 만큼 자신만의 노하우도 존재한다. 최 씨는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해당하는 말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임의의 캐릭터를 정한다. 캐릭터의 말투로 가사를 쓰고 그 말투에 어울리는 멜로디를 적으며 음악 작업을 이어간다. 일련의 자연스러운 곡 작업 흐름은 최 씨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부각한다. 최 씨는 2018년에 가수 아이유의 ‘삐삐’라는 곡을 편곡 및 커버해 화제를 모았다. 해당 커버 영상은 조회수 116만회를 기록했다. 최 씨는 마음이 맞는 밴드 친구들과 각자의 스타일로 ‘삐삐’라는 곡 안의 주인공을 표현했다. 재미로 시작한 합주였음에도 최 씨를 포함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음악적 색깔이 어우러져 멋진 공연이 완성됐다. ▲ 최 씨는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잘 표현한다. (최예근 씨 제공)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만 곡이 탄생한다’ 최 씨가 음악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이유다. 최 씨는 “유독 하고 싶은 말을 곡에 담을 때 좋은 결과물이 많이 나온다”며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라 더 많은 고민과 연구가 담겨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최 씨는 누군가의 이야기 그 자체에서 곡의 영감을 얻는다. 최 씨는 “누군가에게서 듣는 이야기가 곡의 첫 씨앗이 된다”며 “요즘엔 청춘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최 씨의 음악 활동에 빼놓을 수 없는 악기가 있다. 바로 건반이다. 어렸을 적부터 늘 피아노와 함께한 최 씨는 귀에 들리는 음악을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피아노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화려한 건반 실력을 자랑하는 뮤지션이 됐다. 여전히 최 씨는 음악 작업을 할 때 건반을 사용한다. 가장 익숙하고 오래 다룬 악기임과 동시에 컴퓨터로 음악 작업을 할 때도 건반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 최 씨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과 만나고 있다.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송 제공) 최 씨는 방송을 통해서도 대중과 만난다.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진행한 ‘너의 이름은’이라는 신인 발굴 프로젝트 우승을 시작으로 활발한 방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인 KBS2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많은 프로그램이 의미가 있지만, 최 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너의 이름은’이라는 프로젝트였다. 최 씨 음악 인생의 첫 1위이자 TV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처음으로 자작곡을 선보인 자리라 더 뜻깊다. 수많은 무대에 서본 그에게 가장 인상적인 공연은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한 신입생 공연이다. 한 학교의 학생으로서 소속감을 갖고, 비슷한 또래이자 같은 전공을 가진 동료들과 처음으로 합주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출중한 실력을 갖춘 음악학도들과 함께한 공연은 최 씨에게 큰 기쁨이었다. 최 씨는 “이날 뒤풀이라는 개념도 처음 접했다”며 새내기였을 때의 설렘을 드러내기도 했다. ▲ 최 씨는 방송 출연, 정규 앨범 발매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최예근 씨 제공) 최 씨는 지난 4월 22일, 데뷔 8년 만에 ‘갈 곳을 잃어도 어디든 흘러갈 수 있게’라는 이름의 첫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대중적인 음악 트렌드와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바람 등 다양한 고민을 거듭하며 작업한 앨범이다. 결과적으론 최 씨의 음악적 색깔이 많이 묻어난 곡들로 앨범을 구성했다. 이번 앨범엔 자각몽과 허수아비라는 두 개의 타이틀곡이 있다. 특히 허수아비는 ‘멋짐’을 요구하는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곡으로 후렴구의 중독성이 강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음악에 담을 때 비로소 빛을 낸다는 최 씨.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릴지라도, 음악을 통해 본인이 느끼는 사랑을 세상에 전하고 싶은 최 씨의 소망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글/ 정연 기자 cky6279@hanyang.ac.kr

2020-05 04

[동문]원은지 박사, 매일경제 ‘생명과 과학’ 칼럼을 통한 쉽고 간결한 과학지식 전달

“생명에서 환경과 생태계로” 올해는 교토의정서가 만료되는 해이자 195개국이 파리협약을 통해 논의된 신기후체제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해양과학을 기반으로 환경과 생태계에 관한 연구와 동시에 학생들 또는 비전공자들을 위한 ‘생명과 과학’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계신 한양대학교 해양·대기 과학 연구소의 원은지 박사님을 인터뷰했습니다. Q. 박사님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A: 어릴 때부터 지구과학과 생물을 좋아했고, 지구·해양과학과에 입학한 후 해양오염 쪽으로 공부를 더 해서 해양환경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어 환경운동 같은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해 환경과 생태를 공부했고 현재는 해양대기과학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한양대학교 해양대기 과학연구소는 어떤 곳인가요? A: 한양대학교 ERICA의 해양융합공학과, 서울캠퍼스의 생명과학과와 건설환경공학과 소속의 교수님 11분과 저를 포함한 9명의 박사님으로 구성된 곳으로 기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융합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인 연구소입니다. 이 연구소에서는 기후 및 해양대기환경 변화, 환경오염과 독성, 생태 진단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해양 관련 연구자 및 기관 간의 교류 활성화를 통한 공동 연구의 기초를 제공합니다. 현재 저는 해양과학 기반으로 환경과 생태계를 진단하고, 모니터링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남조류 번성이 연안의 생태계와 생물의 생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입니다) Q. 박사님이 소속되어 계신 ‘BK21 해양과학 기술인재 양성팀’은 어떠한 팀인가요? A: 한국연구재단에서 학과 대학원생과 연구 인력을 지원하는 인력양성사업의 하나로 해양융합공학과의 BK21+사업팀 명칭입니다. 해양융합공학과 BK21+사업팀은 기초과학과 해양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연구 및 인프라 구축, 이를 통한 해양과학기술 분야의 인재 양성이 목표입니다. 저 또한 지난 2년간 연구교수로서 사업의 지원을 받았고, 현재도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생명과 과학’이라는 칼럼을 비롯한 칼럼 활동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A: 4년 전 우연히 기회가 되어 온라인 신문에 육아하며 실험을 하는 이공계 대학원생과 연구원에 관한 짧은 에세이 형식의 글을 썼고, 그때 알게 된 편집자의 소개로 재작년에 부탁을 받아 쓰게 되었습니다. 생물학 분야를 다뤄야 한다는 것에 고민도 했지만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생명에서 환경과 생태계로 잇는 것을 글의 방향으로 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Q. 사회 이슈에 다방면으로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가장 큰 관심 분야가 무엇인가요? A: ‘생명과 과학’ 칼럼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은 결국 인간과 환경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변화가 작은 해양생물에 주는 영향을 진단하는 것이 제 연구 분야지만, 결국 인간도 그 생태계의 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훌륭한 과학기술을 통해 알아낸 자연이나 생명의 원리의 경이로움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저만의 ‘생명과 과학’ 칼럼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Q. 아이들의 시각에서 글을 시작하셔서 칼럼을 작성하시는 것 같은데 어디서 나온 것인가요? A: 저는 글의 주제를 가까이에서 찾으려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기 쉬운 연구 분야 선후배의 연구 주제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평소에 글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최근 논문이나 학술대회에서 재밌는 것들을 기록해두는 편이고, 제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아이들의 질문을 시작으로 재밌는 연구를 찾기도 합니다. Q. ‘생명과 과학’ 칼럼은 언제까지 게재될 예정인가요? A: 신문사에서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는 계속 쓰려고 합니다. 가끔은 원고의 마감이 부담되지만 다른 분야의 저널을 찾아보는 것이 일종의 취미가 되었습니다. 전공 분야를 살려 해양과 지구란 주제의 칼럼을 재밌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기회가 된다면 그런 칼럼을 작성해보고 싶습니다. Q. 다음 주제들로 생각해두신 것들이 있을까요? A: 아직 다음 주제도 정하지 못했지만 요즘 코로나 19에 파생된 이슈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나 격리, 불안함이 우리의 삶을 많이 바꾸고 있는데 집단생활이나 타인과의 관계가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이나 빛이 생명에게 미치는 영향도 다양하게 찾아보는 중입니다.

2020-05 04 중요기사

[동문]문혜성 동문, 유튜버, 치어리더, 작가 등...무한한 도전을 이어가다 (3)

문혜성(성악과 15) 씨는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자신의 전공 분야인 성악부터 유튜버, 치어리더, 작가, 진행자(MC) 등 많은 활동을 했다. 수많은 도전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문 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름이 브랜드가 되다’ 문 씨의 좌우명이자 상징처럼 여겨지는 말이다. 문 씨는 ‘수지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것 같다’는 연예인 수지 씨의 기사 댓글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름 하나만으로 누군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능력, 곧 한 사람의 이름이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그 후부터 문 씨는 본인도 타인에게 사랑받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자 했다. 많은 노력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가치를 상승시킨 문 씨는 이제 해당 슬로건의 아이콘이 됐다. ‘이름이 브랜드가 되다’라는 말이 문 씨의 도전에 더 큰 활력을 불어넣는다. ▲ 문혜성(성악과 15)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대학 졸업 연주를 선정했다. (문혜성 씨 제공) 3살부터 동요를 부르며 무대에 오른 문 씨는 뮤지컬 배우의 꿈을 갖고 예고에 진학했다. 본래 문 씨는 실용음악을 희망했다. 문 씨가 하고 싶은 일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신 부모님의 권유로 성악을 시작했다. 성악가로서 수많은 무대에 올랐을 문 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대학 졸업 연주다. 문 씨는 “한양대 학생이자 성악가로서 선 마지막 무대라 제일 인상적”이라며 “졸업 연주 영상을 유튜브에 편집해 올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문 씨는 해당 영상을 계기로 유명 악기 브랜드와 협업해 성악과 동기들과 공연도 열었다.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들을 위한 무대라 더 의미 있었다고 한다. ▲ 문 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들을 위해 역조공 팬밋업을 하는 모습. (문혜성 씨 제공) 문 씨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순간을 담는 채널인 '혜성 moonbrand'(클릭 시 해당사이트로 이동)를 운영한다. 다양한 기업 운영 채널에서 고정 출연도 맡고 있다. 문 씨는 약 3년 전 차기 뮤지컬 배우로서 경쟁력을 갖고자 개인 유튜브를 시작했다. 현재는 영상 만드는 일 자체에 큰 흥미와 보람을 느껴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진로를 굳힌 상태다. 가장 인상 깊은 활동은 ‘역조공 팬밋업’이다. 문 씨가 구독자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진행한 이벤트였다. 이날 문 씨는 팬들을 위해 30만 원 상당의 선물, 레크리에이션 활동, 소통의 시간을 준비했다. 그 밖에도 문 씨는 공중파 방송 출연, 클래식 잡지 인터뷰 등 성악 전공 유튜버로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 문 씨는 치어리어에도 도전했다. (문혜성 씨 제공) 문 씨는 슬럼프마저도 새로운 도전으로 극복했다. 삶의 무기력과 스트레스를 떨치기 위해 방문했던 배구 경기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선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빠르게 변화하는 경기 점수를 보며 예술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이후 다양한 배구 경기를 챙겨보며 무대에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지인의 추천으로 치어리더에 도전했다. 문 씨는 “치어리더를 하며 수많은 관중과 함께 빠른 음악에 맞춰 목소리 높여 응원할 수 있었다”며 치어리딩의 매력을 소개했다. ▲ 문 씨가 집필한 '누구나 쉽게 치는 K-POP 시리즈'의 책들 중 하나다. (삼호뮤직 제공) 음악의 대중화를 향한 문 씨의 바람은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졌다. 문 씨는 ‘누구나 쉽게 치는 K-POP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피아노 반주 책을 출판했다. 수준 및 분기별로 최신 가요들을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반주 책을 한 권씩 집필한다. 최근 일본 수출을 시작해 K-POP을 사랑하는 해외 팬들과도 만나고 있다. 일반 대중들이 음악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길 바란 문 씨의 진심이 담긴 책이다. 문 씨는 본인이 집필한 도서를 한양대 학생들과 교내 도서관 라운지에 기증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음악이 접근하기 쉬운 분야임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희망한대 봉사활동을 하며 음악 이외의 새로운 경험이 필요함을 느낀 문 씨는 학교 축제 MC에 도전하며 말하는 즐거움을 찾았다. 첫 시작은 서툴렀지만, 어느덧 MC 개인 재량으로 행사 중간의 공백을 메울 만큼 베테랑이 됐다. 관중들과의 호흡도 수준급이다. 문 씨는 ‘입장하면서 안부 인사 시작하기, 레크리에이션 강사처럼 한 톤 높게 진행하기, 관객들이 공감하는 이야기 던지기’ 등 MC로서의 진행 노하우를 밝히기도 했다. ▲ 문 씨는 두 친구와 함께 '직접 만든 한복을 입고 노래하는 모습을 담는 영상'을 촬영했다. (문혜성 씨 제공) 문 씨의 끊임없는 도전의 비결은 추진력이다. 문 씨는 어떤 제안이 왔을 때, 하고 싶은 일이라면 주저하지 않는다. 걱정보단 설렘을 갖고 도전에 임한다. 남다른 도전 정신으로 수많은 활동을 경험한 문 씨에게 가장 의미 있는 도전은 한양대 친구들과 함께한 도전이다. 문 씨는 유튜버 유네린으로 활동 중인 윤혜린(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4) 씨, 브랜드 Yuje 대표인 김지영(의류학과 14) 씨와 함께 ‘직접 만든 한복을 입고 노래하는 모습을 담는 영상’을 기획했다. 유명 대기업과 호주 퀸즈랜드 관광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다. 마지막 대학 생활을 열정적으로 보낸 세 사람의 모습이자 각자의 전공 특성이 담긴 영상을 기록해둔 것이라 더 의미 있다. 여러 도전을 해온 문 씨이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된다. 최근 코로나19로 많은 공연장이 영상 콘텐츠 제작을 시작했지만, 관련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문 씨는 “문화예술계가 겪는 어려움을 보며 해당 분야에 미디어콘텐츠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관련 기반을 쌓기 위한 공부를 하고자 경영 대학원 입학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문 씨는 한양인들에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후회 없는 대학 생활을 보냈으면 좋겠다”며 응원의 말을 남겼다. 글/ 정연 기자 cky6279@hanyang.ac.kr